여우비님의, 사진 찍는 남자.를 읽고.

----------------

처음은, 이대 박물관에서였다.
일포드 XP2, 지금은 그의 집에서 오래도록 잠자고 있는 내 첫 카메라, 로모.
그리고, 17세의 그.
 
낯설지만 그래도 어딘가 비슷한 다른 학교의 분위기,
그리고 상냥함과 사려깊음과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던 소년.
 
따뜻한 호의를 담아 바라보고 있었다.
렌즈를 응시하는 그는.
그리고, 렌즈를 통해서 그를 보고 있었던 나도.
 
그 것이 시작이었다.
 
.
 
사실, 갖은 애정을 있는 대로 담아 어여쁘게 찍어낸 사진은 전 남친의 것들이 더 하리라.
열렬하게 연애하고 있었던 중일 뿐만 아니라 사진에 대한 Skill도 그와 사귀던 몇 년 전에 비해 훨씬 는 상태에서 찍은 것들이니까.
 
하지만 사진과 연애에 대해서 말하라 한다면,
애정과 놀림을 담아 구구(전의 전 남자친구니까 옛 舊자를 두 개 써서 舊舊.다), 라고 부르는. 그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맞다.

처음, 카메라를 사서 사진을 찍기 시작하였고,
그리고 그 때에 그가 있었다.
 
그의 사진을 찍고, 또 그에게 보여주면서
음악과, 먹을 것과, 글과, 닿음과, 그 외에 수많은 소통 수단과 더불어서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내가 보는 너.
그렇게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는.
소중한 사람.
 
그에게 넘겨주지 않은, 그리고 그 걸로 계속 협박하고 울궈먹는 그의 사진만 모아 놓은 앨범을 보면
위에서 언급했듯이 사귀기 전의 미묘한, 그리고 가능성을 담은 서로의 시선과 느낌이 첫 장이고
그 다음 장을 넘겨보면 사귀고 나서의 사랑스러움이 묻어나기 시작한다.
사진 한 장 한 장에 그 사람 자체는 크게 변함이 없이 여전하지만, 서로의 거리가 가까워 짐에 따라 더 보이는 그의 모습들이 장마다 늘어난다. 그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보인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성장하는 그의 모습에 따라, 나의 성장을 짐작하게 한다. - 이러니 저러니 해도 새내기였단 말이다. 우리 둘 다.
 
그와 헤어지고 몇 년, 그의 사진을 찍지 않았다.
그만큼의 공백.
 
그리고 오래간만에 본, 타인이 찍은 그의 사진.
 
여전히 사랑스럽지만, 내가 미처 찍지 못했던 성장한 모습.
그렇게 사진을 찍지 않은 시간들이, 그와 나 사이를 말해주는 것 같아서, 어쩐지 무척이나 아쉬워졌다.
 
모르겠다. 그 이후 왜 사진을 더 안 찍었는지.

농담 삼아 3년 간 계속 찍었으니 지겹다. 라고 했지만.
그를 찍어서 계속 내 마음이 남아있는 걸 보는 게 두려웠을 지도 모르고
혹은 예전처럼 그렇게 사랑하는 마음이 묻어 나오지 않는 사진을 보는 게 싫었을 지도 모르고

사실은 그저 둘 다 바빴을 뿐일 지도.(웃음)

어쨌든, 오래 전 기억의 편린을 들추어 보며
다시. 너를 찍고 싶어 졌다고.
또 다른 의미로 소중해 진 너를.
보고, 또 느끼고 싶어졌다고.
그렇게 말하려고.

그래서 쓴 글.

---------------

학교 여학우 커뮤니티에서 알게 된 후 스토킹질을 해 왔던 여우비님의 이글루에서 정말 즐거운 글을 보고, 겸사겸사 글을 쓰게 되었다.

사실 내가 사진을 찍는 이유에 대해서는 늘상 말했던 것 같은데 막상 찾아보니 제대로 쓴 글이 하나도 없더라.

평소 어투대로 마구마구 써 내려갈까 생각했는데,
구구 앨범을 보고는 어쩐지 이렇게 쓰고 싶어져서.

그런데 써 놓고 나니까 의도한 것과 달리 졸지에 감상적이 되어 버렸어..ㄱ-
이런 걸 쓰려고 했던 게 아닌데!!!!!!!!!!
상큼 발랄하게 아가씨들 어여쁘게 찍는 거랑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수다 떨다가 마구마구 난사해서 맘에 드는 사진 얻어내는 게 좋다고 말하고 싶었거늘......OTL

머 그런 내용은, 다음 기회에;

글 엮어서 쓰겠다고 말씀드렸기 때문에 일단은 공개로 했지만,
보셔야 할 아가씨께서 보시고, 어느 정도 충분히 열어 놓았다 생각되면 보호로 돌릴 예정.

그리고 나도 참고(?) 삼아 사진을 올리고 싶었지만
그(웃음)는 더 이상 내 남자가 아닌지라 함부로 사진 올리기가 뭐해서...
...기실 구구 따위에게 인권은 없기 때문에(폭소) 저 이유는 핑계고 더 솔직한 이유는 예전 사진 찾아서 올리기가 귀찮..ㄱ-

게다가 잘못 올렸다가 어딘가의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테러 당하고 싶지 않......;;

나중에 구구의 최근 사진이라도 찍게 되면 그 때 다시 올리도록 하지요-.

이상 끝~

Posted by 리미

나는 사진이 취미라곤 하지만, 해외 여행을 가서 찍어온 사진은 정작 별로 없다. 다른 건 무겁고 힘드니까 로모를 들고 나갔는데, 갈 때마다 배터리가 다 되거나 고장이 나서 결과물이항상 망했거든.

그런데다가 여행지에 가서 사진을 많이 찍는 것도 아니다. 말이 카메라를 갖고간 거지, 돌아다닐 때 귀찮다고 숙소에 놓고 다닌다거나, 들고 다녀도 노느라고(그렇게 활동적이지도 않은 주제에) 바빠 찍지도 않는다. 음식의 경우도 일단 먹고 배 부른 후에야 "앗 사진 찍었어야 하는데!"라고 후회하고.

그래서 나중에 돌아와서는 몇 컷 없는 자신이 찍은 사진이나 동행했던 사람의 사진, 혹은 다른 사람의 동일 여행지 사진을 보면서 무지하게 후회한다. 으어 이렇게 예쁜데 나도 찍을 걸.. 거길 다시 언제 가 보겠다고.ㅠㅠ

특히 중국 여행, 그 중에서 몇 컷 건진 내몽고 사진이나
이번 보라카이 여행에서 승은이가 올린 사진들을 내 것과 비교해보면서 완전 좌절했다.
내몽고 사진은 사진의 양적 측면에서, 보라카이 여행은 사진의 질적 측면에서.
바기오 사진은.. 필름 자체가 행방불명이니 논외;

아 내가 미쳤다고 왜 로모를 갖고 갔을까. 배터리 등 체크는 왜 안 했을까. 브로니카까진 못해도 펜탁스라도 들고 갈 걸. 보라카이에선 렌님 카메라를 빌렸지만(감사!) 내 손에 익지 않은 카메라이니 결국 결과물이 아쉽잖아. 게다가 한 번 뿐인 여행인데 왜 센시아를 갖고 간거야. 집에 남아도는 게(많다는 뜻이 아니라 안 쓴다는 의미에서) 프로비아 벨비아 NPH400인데.

이렇게 후회막심하지만.. 아마 앞으로도 계속, 여행 사진은 많이 찍지 않을 것 같다.^^;

가시적인 것이 남지 않는 것은 물론 아쉽지만, 나는 사진을 찍기보다는 그냥 시간을 즐기고 싶다. 중국에서의 정신없었던 순간들, 밤에 두부군과 까르푸에 장보러 나가고, 지수와 이화원에서 수다 떨며 돌아다니고, 10시간 넘게 추위에 떨며 내몽고에 가는 그 와중에 사진을 찍을 생각은 나지 않더라. 추운 밤 아이들과 바기오의 신년맞이 불꽃놀이를 감상하며 웃고 떠들고, 보라카이에서 승은이와 조곤조곤 대화하며 화이트 비치의 파도의 끝자락을 밟고 걸으면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생각은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조금 떨어져 바라본다는 것이 되니까, 여행에서는 그 속에 있고 싶어. 그 것이 나의 여행.


...아니 근데 그래도, 최소한 찍은 건 제대로 나와줘야 할 거 아냐?! 한 롤이 죄다 날라가거나 다른 롤은 달랑 2, 3컷 나오는 건 도대체 어느 나라 예의냐?! 아무리 평소에 버려뒀다가 여행 때만 챙겼다고 해도 로모 즐!! -_-+

Posted by 리미